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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_History

아쿠아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1999년은 ‘패키지여행 혹은 배낭여행’이라는 이분법으로 해외여행을 재단하던 시기였습니다. 해외로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사에서 만든 패키지 단체여행 상품을 이용했었고 그게 싫은 사람들은 무조건 배낭을 메고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니는 스타일의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쿠아가 소개한 ‘트렁크족’이라는 개념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이드 없는 자유여행이라는 점에서 패키지여행과 달랐고 남국의 해변과 리조트에서 휴양하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배낭여행과도 차별화되었습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여행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질성 때문에 여행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여행문화로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흑백논리와 획일성으로부터 탈피하여 좀 더 자유로운 여행을 만들고자하는 여행자들의 무의식적인 욕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2008년까지의 10년은 ‘트렁크족’이라는 아쿠아의 DNA를 더 확고히 하면서 그 가능성을 확대해나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푸켓 지역 하나밖에 없었던 여행정보가 동남아와 남태평양의 다양한 휴양지로 확대되고 아쿠아의 취지에 동참하는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홍대 앞에 카페까지 오픈하면서 아쿠아가 주장하는 ‘트렁크족’이라는 개념은 더 실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고 제방을 무너뜨린 강물처럼 그 세력을 넓혀나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방콕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대도시나 발리의 우붓처럼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지역도 트렁크족 컨셉(자유+휴양 여행)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쿠아 회원들에 의해 증명되면서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더 큰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어느덧 ‘트렁크족’이라는 자유여행 컨셉은 해외여행 문화의 주류가 되어있었고 아쿠아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 사이트로 발돋움해 있었습니다. 정말 꿈만 같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남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그 곳으로부터 거대한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 자유여행 문화가 정착하게 된 것은 그것을 위해 오랫동안 달려온 아쿠아로서 분명 기쁘고 축하할만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그것은 아쿠아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이었던 꿈과 이상의 상실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 정보를 구축해야 하는 수많은 지역들이 남아있었고 사업을 확장시켜나갈 수 가능성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컸지만 애초의 목표가 얼추 이루어진 상황에서 그런 것들은 너무나 약한 동기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기존의 체계에 대한 반항정신을 갖고 변화를 갈구했었던 소수자로서 그 분야의 주류가 되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쿠아는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이 불가피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그 방향을 유지하려는 관성과 그것을 파괴하려는 본능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은 ‘트렁크족’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가치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쿠아가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 아쿠아를 다시 힘차게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찾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하면 할수록, 아쿠아는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학대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무기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보일듯 말듯 희미한 불빛으로 존재하는 미래의 가치를 찾기 위해 아쿠아는 빛을 버리고 차가운 어두움 속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만들어 놓은 기반을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무게를 최소한으로 만들고 움직임도 최소화한 채 정적 속에서 새로운 불빛이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득권과 주류의 길을 포기하고 비주류이자 소수자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내 안의 심연을 탐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아쿠아가 서있는 곳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점입니다. 드디어 아쿠아의 방향을 잡아줄 새로운 가치를 찾은 것입니다. 아쿠아의 새로운 이상을 최대한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새로운 차원의 여행자와 그 공동체를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트렁크족의 가치를 넘어 여행의 힘으로 자신의 삶마저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행자!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열린 공동체!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는 물론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그것은 여행이 가진 보다 본질적인 가치로 향한 길입니다. 아울러 그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의 반복인 동시에 차원이 다른 도전입니다. 과거 '트렁크족'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여행을 즐기고 있던 서구 여행문화를 수입한 것에 불과했다면 이번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돌연변이를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그 곳은 지난 여행이 끝났던 곳이며 또한 1999년 아쿠아가 첫발걸음을 떼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시즌 2의 시작입니다. 과거에는 빛만 보고 열정만으로 달려들었다면 이번에는 어두움과 차가움이 함께 할 것입니다. 앞만 보고 혼자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며 느린 걸음으로 함께 걸어 나갈 것입니다. 목표로 한 곳에 도착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우리가 향하는 그 곳과 얼마나 일치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선뜻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향하려고 하는 목표가 너무나 추상적이고도 이상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우리를 계속해서 반항정신을 가진 소수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우리에게 영원한 동력을 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꿈이기도 합니다. 그 꿈 앞에서 진실할 수 있다면 아쿠아는 자유롭게 흐르며 순환을 만드는 ‘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느리면서 빠르고, 작으면서도 큰 그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수에 머물렀던 물이 바다로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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